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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irthday Dear ___

「고통을 이해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 리이치는 꺼진 조명 속 나무 조각상처럼 방 중앙에 서 있었다. 나는 검은 레인코트와 우산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트리고 그의 곁에 선다. 테이블 위엔 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어서 와, 라고 그가 말한다. 우린 돌아올 장소에 대해 논한 적 한 번도 없었기에 이는 무척이나 이질적인 울림으로 들린다.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붙고 구두 속이 빗물로 질척거리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의 표정엔 경멸과 동정이 묻어있다. 불쾌감이 들지만, 표현하지 않는다.
「생일 축하해.」
꽉 잠긴 창문 안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난반사된다. 암막 커튼이 미처 가리지 못한 유리 위로 빗방울이 흐른다. 이따금 뇌편이 지나칠 때만 사람이나 사물의 실루엣이 반짝이다 흩어졌다. 나는 그제야 식탁 위 상자가 유명 제과점의 케이크 포장지임을 깨닫는다.
「내 생일…….」
「응.」
잘못 생각한 거 아냐? 2월 25일이잖아. 답지 않게 축하받은 기억도 있다. 겨울 끝자락의 맑은 날씨였다. 좋아하는 가게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시계를 선물받았다. 관계와 감정에 대해 망각한 채 손목을 매만지는 내게 그가 질문했었다. 살아있어서 기뻐?
무어라 대답했었더라.
분명,
한시도 감상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구나, 라고

나무 성냥이 유릿가루를 바른 종이에 스치며 마찰음을 낸다. 일렁이는 빛이 리이치의 손 주변을 둥글게 비춘다. 그는 어느새 상자에서 벗어난 하얀 생크림 케이크 위에 초 하나를 장식하고 불을 올린다. 상념이 연기처럼 흩어진다.
「슈야가……죽었으면 좋겠대.」
「누가?」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
「우연이네, 나도 같은 이야기 들었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보류.」
「거절은 아닌가……뭐, 됐어.」
재 향기가 녹아내린 생크림의 달콤함과 섞이고, 우리는 침묵과 부재만으로 장식된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우리는, 서로가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평생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광경을 볼 만큼 오래 함께 지낼 수 있으리라고도 여기지 않는다. 그 집에서는 태어난 날에 특별한 일 따위 생기지 않았다. 자유와 고독을 저울 양측에 두고 낭떠러지 위 좁은 길을 걷는 게 삶이라면, 언제든 자신이 도려낸 공허 속으로 떨어져도 이상할 일 없지 않은가. 하지만, 목전의 사람은 편안히 웃고 있다. 나는 이제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서 그 미소를 몇 번이고 읽은 적 있다. 반사적으로 뱉는다.
「귀찮아.」
라고.

리이치는 잠깐 눈을 크게 뜨다가, 소리 내 웃더니 형색을 지워버린다. 그는 코트 안주머니에서 케이크를 자를 나이프 대신 권총을 꺼내 불빛 옆 내려놓는다. 잘 짜인 연극에 초대하는 것처럼, 삶의 관객이었던 이에게 배역을 주고 예정된 끝을 알리는 것처럼.
문득 다리가 아파져, 나는 근처에 있던 소파 위 주저앉는다. 자세가 비틀려 푹 기대는 모양이 된다. 뜯지 않은 택배 상자들처럼 지리멸렬한 사고 위 명제가 한 줄 흐른다. 그런가, 끝이구나. 이렇게 마무리……. 공간을 다시 둘러보면 놀라울 만치 그의 물건만이 깔끔히 사라진 채다. 종말은 진작에 있었다. 네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끝이 와서야 체감할 뿐이야.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극본을 읽는다.
「알아? 세계는 네가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어.」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슈야는, 너 하나 죽는다고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하지? 살아 있는 것에 진작 질렸으면서 자살하기에도 지쳐 있다. 막연하게 비어 있는데, 거울을 보아도 몸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까, 물질이나 표면적인 관계로 채울 수 있다고 믿잖아.」
「리이치,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이 세상에, 대체 가능한 삶은 없다는 말이야.」

내 앞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그런 소릴 하는 건가. 돌아오자마자 창문을 조금이라도 열어둘 걸 그랬어. 듣기 싫은 말들이 우성에 섞여 사라지도록. 초는 계속 타 들어간다. 호흡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자만하지 마.」
「사실은 귀찮은 게 아니잖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럴 수 있었어.」
「버리느냐, 방치하느냐…….」
리이치는 권총을 집어 들고, 몇 발짝을 옮기고, 숨이 닿을 거리에서 노래하듯 계속 읊는다.
「네가 가진 것들의 결말은 늘 그랬지. 아마 나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취급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슈야, 오랫동안 이 공간을 공유하면서, 시간을 독점하면서…넌 한 번도 나를 가져본 적이 없는 거야. 애초 사람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본 적도 없는 거지. 고민하기엔 네 영혼이 너무 닳아 있으니까. 그래서, 네가 가진 욕망이 여태까지의 것과 다르다는 자각도 하지 못해.」
그는 나의 손 위에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트린다. 차가운 감촉이 전해진다.
「생일 축하한다면서.」
「그래, 새로 살아가게 해 줄게.」
「듣기 좋은 말은 하나도 안 하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잖아?」

나는 무의식중 여섯 발의 탄환을 확인하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다.
「세이토, 너는 잘못 판단하고 있어. 난 네 시체를 직접 수습하지도 않을걸. 사람을 태우는 트럭에 맡겨버릴지도 모르고 높은 빌딩 어디에서 던져버릴지도 몰라. 돌아와서는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내 물건들을 챙기지도 않고 이곳에서 떠나 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 속에서 살아가겠지. 감상 없이 무기질적인 하루를 이어가다가 널 떠올릴 수도 있겠지. 그때쯤이면 이 대화도, 네 목소리도, 얼굴도 전부 잊혔을 테고. ……네 저주는 심리적인 거야. 이어받는 사람이 작정한다면 끊어질, 부질없는 속박이라고.」
뱉으면서도, 마음에 없는 소리란 감상이 들었다. 무심결에 달라진 호칭이 가장 그랬다. 인정하고 정정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촛농이 시트 위에 떨어진다. 식용색소가 들어간 화이트 초콜릿 펜으로, 생일 축하한다 쓰인 문구가 열기에 번진다.
「넌, 그런 사람한테 죽고 싶어?」
「그래.」
동시에, 그는 나의 발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시선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조금 젖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왜?」
아…하나밖에 없던 우산을 내가 가져가서 그런가.
「사랑하니까.」

이제 초의 끄트머리가 조금 남았을 뿐이다. 방아쇠를 당기지도, 그리하여 생일을 맞이한 사람이 초를 불어 끄지도 않았으나 나는 빨리 모든 것이 암전되기를 바란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리이치는 천천히, 장갑을 벗고 상처 난 두 손으로 나의 손을 잡는다.
빛을 등진 사람의 실루엣. 나는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알면서,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려 한다. 얼핏, 잘 알려진 소설의 대목이 떠오른다. 벽의 잎이 떨어질 때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한 사람의 이야기다. 연약한 식물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대체되었고 죽고 싶어한 이는 생명을 얻었다. 나는 막연히 빛이 사라질 때 그가 떠날 것이라 여기기 시작한다. 일 분 남짓한 시간 안에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끝낼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이는 세상에 얼마나 될까? 공교롭게도 내가 그랬고,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의 고백을 받고 있었다. 나는 손수 존재를 지워버린 이의 이름을 한순간도 기억한 적이 없다…….
맞잡은 손이 떨린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꽉 막힌 음성으로, 정확하게 발음한다.
「그래서 무서워…….」
그러자, 지금까지 외면했던 사실들이 모두 와닿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타인의 감정이 형태를 가진 것처럼 피부 안을 따끔거리게 만든다. 내가 방금 부른 이름은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사람이고, 그를 〈존재했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나는 그를 마치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던 것마냥 죽여야만 했다.
분명 순간의 애정은 줄곧 잃어버린 채였던 마지막 퍼즐 조각처럼 나의 본질을 완성해 주겠지만.
다시는
긴 삶에서 그만큼의 사랑을 받을 날이 오지 않을 테고…….
결국 네가 좋아한 건 우리가 살아 있던 시간이었으니까, 넌, 다른 모든 하잘것없는 생명처럼 자신의 인식이 끝나는 게 두려운 거라고.

빗물이 손등 위로 떨어진다. 상대의 결여를 이해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뱉지 않는 것은 이별일까? 줄곧 언급된 영혼의 손상은 그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사랑해」라는 말을 유언으로 준비한 사람에게 무엇을 말해야 기로를 바꿔놓을 수 있단 말인가.

빛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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